고등학교 때 시험 감독이 없는 시험을 치름.
시험 답안지를 주고 선생님은 나감
입시 경쟁을 하고 대학을 가는 시대였음에도 단 한 번도 부정행위가 없었음.
“쪽팔리게 커닝을 하냐?”
→ 점수 한 개 더 받겠다고 당당하지 못하게 커닝을 해서 스스로 부끄럽고 싶지 않다.
청렴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에서 시작이 된다.
Moral reminder
윤리적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들려주는 것
→ 들은 사람은 듣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윤리적인 행동을 한다.
고등학생들의 허세 그리고 선생님의 의도치 않은 도덕적 각성의 메시지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킴
→ 허세가 긍정적인 파워를 일으키는구나를 느낌.
해외 연수를 가서 일본인 친구를 봄
특이한 행동이 몇 개 있었는데, 돈이 많음에도 셰어하우스에 삼. 그리고 수업도 이상한 걸 들음 (막스주의 이론, 군사안보학)
그래서 김지윤이 물어봄
“왜 그런 곳에 살아”
“영어 배우려고”
“이미 영어 잘하잖아?”
“영국식 영어에 익숙해서, 미국식 영어도 들으면서 악센트를 고쳐보려고”
“수업은 이미 아는 거 쉬운 거 들으면 되잖아?”
“일본 외무성에서 나를 보냈는데, 내가 잘 아는 거잖아! 여기까지 왔으면 모르는 거 듣고 가야지 아는 과목만 어떻게 듣고 가냐 쪽팔리게”
“It’s Embarrasing”
우리 인사청문회에서 나오는 소리
“몰랐습니다.”
”파트너가 했어요”
”그때는 관행이었어요”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냐”
이렇게 뻔뻔하게 인사청문회에서 대답하는 사람은 정작 고위공직자가 되어서 의전 다 챙겨다 님
우리는 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가 되었을까
우리 사회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바르지 않은 게 아니라 못 사는 것
급속도로 발전하다 보니까 성공이라는 것이 절대 선이 되어버림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 실패하는 사람들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민폐가 되어버림
성공하기 위해 자잘한 부정행위는 용납되고, 그런 부정행위들은 지혜처럼 여겨짐
오히려 정직한 사람들은 업신여김
한 개인이 부정행위를 저지를까 말까 하는 선택에 기로에 있을 때,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사회가 그 부정행위를 얼마나 용인해주는가’이다.
털어서 먼지 하나 안나는 사람이 없다.
언젠가는 우리가 그 부정행위를 똑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순간이 오면 우리가 스스로를 더 쉽게 용서를 하고 덜 부끄럽기 위해
내가 부정행위를 저지르고도 슬쩍 넘어가기 위해 지금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 보험성 용서
보험성 용서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존심이 필요함.
자존심을 지키는 사회가 청렴한 사회다.
당신의 자존심은 잘 지켜지고 있나요?
청렴은 거대 담론 같고 누군가에게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생활 밀착형이다.
자존심을 잘 지키자 그래야 우리가 안 지키는 자들에게 지적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존심을 지키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Questions
자신의 삶이 당당하다고 느껴질 때 (list)
- 잘못을 하고 있는 누군가를 보았을 때, 나의 행동을 먼저 돌아보고 내가 지적을 할 자격이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그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내가 지적을 할 수 있을 때
- 누군가가 내 얘기를 내 뒤에서 한다고 생각해도 아무렇지 않겠다 여겨질 때
1) 무심코 한 선택이나 행동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게 된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초등학생 1학년때였다.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내가 20점을 받았다. 선생님이 스스로 점수를 매기게 하고 매긴 점수를 선생님에게 검사 맡으라고 하셨다.
나는 20점이라는 점수가 부끄러워서 선생님이 안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우개로 답지를 지워서 정확히 몇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쳐서 가져가서 더 나은 점수로 제출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내가 고친걸 봤다고 했고 멱살을 잡고, 바닥에 내팽개치셨다. 점수가 안 좋은 거 가지고는 그렇게 안 하시는데 내가 정직하지 못한 게 더 중한 죄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이 오래된 기억이 아직까지도 기억이 날만큼 부끄럽다.
2)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함으로 마음이 편해진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프랑스 식당에서 일을 할 때였다. 내 사수 데이비드 셰프가 처음 나에게 일을 가르칠 때, 나에게 질문을 많이 했다. 생각을 하고 일을 하고 있는지, 비효율적인거나 잘못했는것에 대해서 특히 놓치지 않고 질문을 많이했다.
요리는 내 전공지식이고, 내가 맡고 있는 섹션에서는 무능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답을 하려고 했다. 모르는 건 추측해서라도, 그럴듯하게 들리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데이비드 셰프는 내가 변명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잘못한 거는 인정하고, 수긍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난 너랑 말싸움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네가 빨리 일을 배워야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 내가 일이 편해져서 진심으로 네가 발전하길 바라. 그리고 나는 너에게 혼을 내지 않아. 내가 너에게 물어보는 것들은 네가 잘못하고 있는 것, 혹은 비효율적인 것에 대해서 확실해서 물어보는 거였어. 그냥 네가 인정하고 수긍하면 서로 편한 거야, 길게 말할 거리도 아니야 "
그가 그렇게 말해줬을 때 나는 그가 진심으로 나를 위하고 있다는 마음을 느꼈고, 변명하려는 의지 없이 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수긍하고 그 이후로 빠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3)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대로 행동함으로 당당함을 느낀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호주에서 유학할 시절,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 글 내용하고 상관없이 친누나도 그렇고 내 친한 친구들도 그렇고 '거기서 대체 뭘 할 건데? 돌아와' 이런 말들을 댓글로 많이 달았었다.
사실 나도 엄청난 확신은 없었다. 생활은 참 힘들었고, 상황은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았고 외로웠다. 하지만 그냥 버티고 싶었고, 도망치기가 싫었다. 죽어도 그곳에서 죽고 싶었다. 결국 나는 학업을 끝내고, 경제적으로 혼자서 독립을 하니까 그 사람들은 아니더라도, 호주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는 환경의 주변에서 어린 나이에 누군가의 아들이나 조카가 아닌 '나 자신'으로써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나 자신으로써만 평가받는다는 경험이 내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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