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하고 안필요한 것

오늘 점심 먹기 전, 언제부터인지 인식하지도 못할 즈음에 밖에서 나는 소방차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냥 지나가는 소리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어색한 그 소리가 길게도 머물러있어서 창밖을 봤다. 

소방차 서너대가 아파트 앞에 서 있었고, 소방관들은 이미 호스를 들고 아파트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뭔가 타는 냄새를 인식했고, 곧장 엄마한테 가서 일렀다. 

"나도 뭔가 타는냄새가 나더라" 엄마는 이러고서는 하던 일을 계속하셨다. 


나는 소리 안칠수가 없었다

"타는 냄새가 나고, 나도 밖에서 소방차를 봤다고 말하면 도망칠 생각을 해야지 왜 가만히 앉아있는 건데?"

그러니 정신 차리셨는지 바로 하던 일을 멈추시고, 몸에 휴대가 가능한 소중한 것들을 빠르게 챙기셨다. 

나도 급하게 방으로 가서 몸에 휴대가 가능한 소중한것... 짧은 시간에 결론을 내고 (아이폰 아이패드 에어팟 프로 그리고 지갑)을 챙겼다. 

그리고 계단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곧 8층 복도에 소방관들과 8층 사는 사람들이 엉켜있는걸 보았고, 거기서 불이 시작된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소방관들은 본인들이 무언가의 폭발로 인한 화재에 조기진압에 성공했으니, 대피할 필요가 없다고 확인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큰 불이었다면 2분이면 윗집까지 충분히 불이 번지는데, 우리같이 책이 많은 집은 더 활활 타버렸을 거라고. 이건 진짜가 아니라 모의 상황극이었어도 적극적으로 대피해야 할 상황인데, 진짜인 상황에서도 엄마는 대처하지 못해서 지금 죽었을지도 모르는 것을 소방관들한테 한 생명 빚진 거라고, 엄마에게는 짜증을 한번 더 냈다. 
 

그리고 나는 방으로 돌아와서는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보았다.

너무 가지고 싶어서 바다를 건너서 가져온, 택조차 감히 못 뜯고 집에서 시착만 하면서 거울에서만 바라만 볼 수 있었던  옷들, 사고 나서도 내가 포장을 뜯으면 혹시나 상태가 상해서 가치가 떨어질까 감히 뜯어보지도 못했던 비싼 신발들, 나를 안달 나게 만들어서 구하느라 며칠을 고생하게 했던 각종 물건들.

그리고 결국 내가 챙겼던건 그보다 가치가 없는 아이패드 아이폰 그리고 에어팟 프로.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것들은 사실 그렇게 소중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JUNE .

20'S LIFE IN SYDNEY and 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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